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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에 열광하며 동경하던 소녀. 그 소설들과 소녀가 매일 마주하는 끔찍한 일상의 접점은 영영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부모와 사회로부터 요구받은 틀에 자신을 충실히 맞추어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한 소녀가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라고 고백하며 첫 소설 <빈 옷장>을 토해내기까지.
무너지는 세계의 잔해는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꿈 많던 소녀의 내면에 생채기를 낸다. 전부라고 믿었던 하나의 세계가 붕괴되면서 느낀 충격과 상처가 <빈 옷장>에서 폭로되었다면, 두번째 소설 <그들의 말 혹은 침묵>에서는 혼돈의 시기로부터 한발짝 물러서서 어디서부터 견고한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지 담담히 되짚어보는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작문 과제에 동경해온 작가들처럼 멋들어진 주제를 쓰고 싶지만, 빈 종이 앞에서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출신과 고등교육 사이의 거대한 간극, 자신의 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모순과 한계 뿐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소녀가 느낀 부조리의 감각. 그 어긋남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결국 하나의 세계를 깨어 부수고 나온 자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