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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 부모, 화목한 가정, 성적에 대한 강한 압박도 없는 집안에서 밝고 명랑하게 자라는 줄로만 알았던 둘째 딸이 수능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한 날이었다. 딸은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다.
타인의 질병 진단은 마치 그 삶의 서사가 파악된 듯 착각하게 한다. 알게 된 것은 이름밖에 없음에도 우리는 그 병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딸이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 7년째 딸의 병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기록이다. 자해, 발작, 의지, 무기력, 회복, 악화... 짧은 병명이 결코 설명해주지 못하는 고통의 구체성이 낱낱이 담겼다.
고통은 또한 엄마를 공부하게 했다. 내과 의사인 저자는 정신의학을 파고들었다. 정신질환에 관한 책, 예술가의 이야기, 뇌의 작동 방식, 자해의 이해, 약에 관한 정보, 정신 의학이 지나온 역사 등 딸의 병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자료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딸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그 내용들을 썼다.
꺼내기 힘들었을 얘기를 숨김없이 담담하게 써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의학 전문가이자 환자의 가족으로서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저자의 용기가 같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