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민주주의가 퇴행 중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극단주의의 광풍 앞에 당황스러운 지금, 여태 최선의 체제로 여겨져온 민주주의를 되돌아 찬찬히 살펴보는 시도들이 늘고 있다. 민주주의의 붕괴를 경고했던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이번 책에선 민주주의의 커다란 구멍을 고발한다.
책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으로 열린다. 이 사건이 단지 일부 열혈 지지자들의 소동일 뿐이었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표현까진 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엔 전직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고 공화당의 주류 정치인까지 선거에 불복했다. 책은 이렇게 정리한다. 주류 정치권이 극단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을 때 극단주의는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고.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진정한 붕괴는 민주주의의 중심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윤리적 누수, 자발적 균열에 의해 발생한다. 저자들은 이들을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로 부르며 민주주의 붕괴의 요인으로 꼽는다.
극단주의자들과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낡은 체제를 이용한다. 합법의 틀 내에서 이들은 폭력이나 억지 없이 슬며시 다수를 누르고 극소수 자신들의 이권을 관철할 방법을 찾아낸다. 저자들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적 장치들이 실제로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뜯어보기를 요청한다. 극단주의자들의 입맛대로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명확히 지적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