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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는 시간순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다. 아직 청년이라고 불리울 나이의 해리 홀레는 자기파괴적인 어둠 속에 발을 담그지는 않았다. 그의 팬인 독자들은 이미 앞서 출간된 다음 이야기들을 통해 그의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시시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뒤늦게 찾아온 <바퀴벌레>는 마치 프리퀄처럼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럽을 떠나 방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 속에서 갑갑한 분위기를 풍기고, 그 막막한 느낌은 해리 홀레의 인생을 예견하듯 그의 주위를 장악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방콕의 암흑가와 국적을 불문한 '권력'들이 끈적끈적하게 결탁한 불쾌한 형태의 어둠이다. 마치 박멸할 수 없는 벌레처럼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불쾌함.
해리 홀레는 이 늪 같은 어둠의 영역을 헤쳐가며 한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된 불행의 연쇄를 추적한다. 그는 아직 성실한 형사이며 곧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또다른 사실도 알고 있다. 해리 홀레는 그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이 현재 맞딱드린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해리 홀레의 인생을 떠올렸을 때, 아직 청년인 그가 등장하는 <바퀴벌레>는 슬픔을 자아내면서도 주인공에 대한 신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