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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연작소설.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맞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런 방식으로 연결된다. 아빠의 납골당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탄 <오리배>의 신지영은 빗길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심야의 질주> 택시기사 해남은 사고로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알아챈 후 마지막으로 태웠던 여학생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 두려워 언제나 그랬듯 도망쳤다. 한편 <세상의 끝> 혜수와 지우는 평범한 얼굴의 젊은 남자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치여 사망한 후 그 바닷가에 머물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있다. 다른 이의 삶엔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스쳐지나가는 길가의 한 고양이 하나도 아홉 번의 삶과 죽음을 경험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선인장 하나를 그릴 수도 있는 것처럼.
소설가 이유리는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독자 역시 소설 속 인물인 게임 개발자가 이 세계의 개발자에게 던질,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289쪽)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전작 <브로콜리 펀치>의, 괴로움을 참다참다 더는 못참아 손이 별안간 브로콜리가 된 사람의 아연한 얼굴을 괴로울 때마다 종종 생각하곤 했다. 선명한 감각적인 묘사가 종종 떠오르는 것이 이유리 소설의 매력.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손끝에서 파스스' 낮은 전류가 흐르고, '따뜻하고 말캉한 뭔가'가 뱃속에서 느껴지는 등의 방식으로 묘사한, 이유리의 이 이야기들이 종종 생각날 것 같다. 여섯 이야기 말미마다 언급되는 '좋은 곳'을 떠올려 본다. 저 너머의 좋은 곳을 떠올리며 이 삶을 더 사랑하게 하는 이야기, 사라진 이들과 사라질 이들이 조금쯤 더 애틋하고 새삼스러워질 이야기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