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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별로 없을 것이다. 지렁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아마도 징그럽다 (50%), 아무 생각 없다 (40%), 낚싯밥 (8%), 귀엽다(1%), 가엾다 (1%)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 비 온 후 다음 날엔 심심치 않게 목격되지만 이 생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런 지렁이에게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 3인. 첫째로는 찰스 다윈이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은 장장 40년 동안 지렁이를 연구했지만 학계에서조차 별달리 관심을 주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무민을 탄생시킨 토베 얀손이다. 그는 길거리에 두 동강 난 지렁이를 보고 머리와 꼬리를 생각한다. 그 누가 지렁이에게도 꼬리가 있다 생각했겠는가? 세 번째로는 이 책의 작가 노에미 볼라이다. 감각 있는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 작가는 지렁이만 생각하다가 결국 '지렁이의 불행한 삶에 대한 짧은 연구'라는 긴 제목의 규정하기 어려운 책을 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과정에 맨 처음엔 호기심이 있다. '이 생물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관심에서 시작된 지렁이 탐색기는 지렁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삶의 은유이기도 하다. 지렁이로 태어나 "이대로 사느니 차라리 신발 끈이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될 수 없다. "다른 무엇이 되는 상상을 하며 돌멩이가 되려다 불행히도 감기에 걸린 지렁이"를 보면 실소가 터진다. 그리고 일순간 지렁이는 결국 지렁이일 뿐이구나 깨닫고야 만다. 이 문장엔 어떠한 비하나 안타까움이 없다. 지렁이는 그저 지렁이일 뿐이다. 이 당연한 명제의 의미를 평생 찾아 헤맬 모든 인간 동료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