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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동생들과 차도로 이어진 앞마당에 돌로 낙서를 한 것이다. 해는 지고 있었고 집으로 들어오는 도로 입구 왼쪽엔 접시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과 고추 말리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엄마의 몸에선 옅은 땀 냄새가 났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불현듯 떠올라 향수에 잠기게 한다. 내 기억의 첫 번째 모양은 접시꽃 모양 같다. 열다섯에는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부모님의 차가 미끄러질까 집 앞 도로의 눈을 쓸었다. 쓸어도 쓸어도 눈이 쌓였다. 두 번째 기억은 눈 결정의 모양이다. 유년시절로부터 많이 멀어진 것 같지만 불현듯 그 시절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 기억의 모양그대로 차원의 창문이 열린 듯 하다. 그 창문으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본다. 앞으로의 모양은 어떻게 될까?
그림책 <내가 여기에 있어>를 발표하자마자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한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는 책의 물성을 십분 활용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잘려 나간 종이를 찬찬히 넘기다 보면 책 속 화자의 인생이 어떤 모양으로 쌓이는지 경험할 수 있다. 자칫 잔잔할 수 있는 이야기에 타공, 공들여 고른 바탕색과 라인으로 입체적인 읽기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인생은 어떤 모양으로 쌓이게 될까? 그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