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주변인이 큰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다면 공감할 텐데, 의사가 선고를 내리는 순간부터 무언가 세상으로부터 유리되는 느낌이 생긴다. 기존에 살던 세상과는 유리막으로 단절되고, 갑작스럽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룰을 내려받는 느낌. 그래, "내려받는" 느낌이라는 것이 적절하다. 일상의 규율, 룰, 법칙 같은 것들이 마치 높은 차원에서 존재를 눌러 버리는 것 같은 위압감으로 온다. "환자분, 이런 거 드시면 안 돼요."와 같은 엄격한 의학의 언어 혹은 "환자니까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지~" 하는 안타까운 선의의 언어로...
급성 백혈병 환자인 저자 김도미는 환자가 된 자신에게 병원이, 가족이, 친구가, 지인이, 처음 본 사람들이 건네는 사랑이나 선의, 오지랖 혹은 무례함의 어느 지점들에 느낀 불편함을 말한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도록 만드는 요소들을 소독하듯 없애 버리고 환자로서만 존재해야 하는 상황의 불쾌감. 그는 사회가 요청하는 환자로서의 삶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지 쪼대로 아플 자유"를 요구한다.
매 장, 병을 둘러싼 사회적 압박의 불편에서 출발하는 김도미의 사유는 곧잘 자신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아픈 몸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는 혼인, 임신, 섹스를 한 세트로만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에 물음표를 보내고 암 환자 자식을 둔 엄마를 질책하는 주변의 눈초리를 얘기하며 돌봄 노동 책임 분산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나와 너를 오가는 예민하고 지적이고 유연한 문장들이 넘실댄다. 활동가로 일할 때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사고의 확장을 했을지, 이 책만으로도 알 수 있다.
맛깔스럽게 잘 만든 음식 하나가 입맛을 돋우어 다른 음식들을 떠오르게 하듯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 입맛 다셨다. <젊고 아픈 여자들>, <와해된, 몸>,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언다잉>...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는 이 책들과 함께 읽으며 머릿속에서 지지고 볶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불온하고 통쾌하고 맛있다.
- 인문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당연히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상실을 수용하는 데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하다. 건강한 몸으로 살아왔던 일상의 시시콜콜함과 작별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례가 필요하다. 환자의 가장 큰 소망이 완치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밑도 끝도 없는 단절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무균실의 입구컷」 중에서
나치 독일 치하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샤를로트 델보는 1942년 3월 체포되어 1943년 1월 아유슈비츠로 보내졌다. 독일 정렴기 4년 동안 레지스탕스 여성을 강제 수용소로 보낸 수용 열차는 단 한 대였고, 델보를 포함한 총 230명이 그 열차의 가축 칸에 올랐다. 그중 종전 후 살아 돌아온 사람은 49명이었다. 델보는 돌아온 이후 곧바로 강제 수용의 고통과 참혹을 기록하기 시작하여 1946년과 1947년 이 책의 1부와 2부를 각각 완성했지만, 원고는 20여 년 동안 발표되지 않았다. 여성의 이야기였다는 점, 전후 드골 정권에게 필요한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에 걸맞지 않다는 점 때문에 여성 레지스탕스들의 존재는 묻혀있었다. 델보는 귀환 후 20년이 지난 시점에 생존자 동기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간의 삶을 듣고 옮기며 ‘아우슈비츠와 그 이후’ 연작의 3부를 완성했고, 이 3부작은 이후 홀로코스트 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국내 출간본은 3부작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여성들의 집단 기억으로 아우슈비츠의 진상을 드러낸 이 회고록은 국가 권력과 남성의 목소리로 쓰인 '대문자 역사' 속에 여성들의 자리를 마련해 냈다는 평을 받았으며 그 철학적?정치적 가치는 시대를 넘어 꾸준히 재해석되고 있다. 칠흑처럼 검은 종이 위에 밝게 하이라이트 된 문장으로 쓰인 1, 2부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서로를 돌보며 끝내 지키려 했던 빛을, 밝은 종이 위에 검은색 상자 안에 갇힌 문장으로 쓰인 3부는 수용소 밖으로 나와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되는, 끝나리라는 희망없이 생존자들에게 짙게 베어있는 어둠을 형상화한 듯 보인다. 선형성에 저항하는 서사 구조, 부서지고 잇따르는 언어를 구사하며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표현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책장을 덮었다가 끝내 다시 열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 역사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살아남은 자는 기억을 되찾아야만 했다. 그가 이전에 소유하고 있던 것을 되찾아야만 했다. 그의 지식, 그의 경험, 그의 유년의 추억, 그의 손재주, 그의 지적 역량, 그의 감수성, 꿈꾸고, 상상하고, 웃을 줄 아는 능력. 그가 거기에 들인 노력을 당신이 헤아릴 수 없다면, 내가 아무리 당신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려고 해봤자다.
세계적인 미니어처 아티스트 타나카 타츠야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담은 그림책이다. 전작 <초밥이 옷을 사러 갔어요>에 나온 초밥들이 이번엔 여행을 떠난다. 초밥이 브로콜리 나무 숲, 튀김 해변, 설탕 모래 사막 등 익숙하지만 새롭게 재해석된 공간을 여행하며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여정을 그린다. 초밥의 모험은 재치 넘치는 디테일과 숨은 재미로 가득하며, 독자가 매 장면 속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며 상상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한다. 특히, 초밥의 밥알을 쫓는 강아지나 소시지 커플들의 동선도 반드시 확인해 볼 것!
타나카 타츠야는 일상 속 사물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미니어처 아티스트다. 빵을 비행기로, 칫솔을 가로등으로 바꾸는 그의 아이디어는 그림책에서도 발휘되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를 놀라게 한다. 이번 <초밥이 여행을 갔어요>는 2024 제5회 TSUTAYA 그림책 대상’에서 제2위를 수상하며 앞으로의 작품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 유아 MD 임이지
추천의 말
유일무이한 아이디어로 쌓아 올린 상상의 세계와,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재기발랄한 말놀이 세계가 펼쳐진다. TSUTAYA 그림책 심사평 중
표고버섯, 팽이버섯, 양송이버섯은 우리 식탁 위 단골 식재료들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버섯 외에 훨씬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습의 버섯들이 존재한다. 버섯 분류학자이자 생태 사진작가인 저자가, 도시 속, 깊은 숲속, 바닷가 근처에서 만난 버섯들의 놀라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류인 버섯의 정의부터 종류, 한살이, 식용버섯과 독버섯 구별법, 버섯이 세상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 등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고, 큼직한 세밀화와 사진을 보기 좋게 담아 이해를 돕는다. 특별 페이지를 마련하여 국내 버섯 이름 찾아보기, 우리나라에서 버섯을 관찰하기 좋은 장소와 계절에 관한 정보도 꼼꼼하게 담았다.
- 어린이 MD 송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