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 2023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25년 <너의 유토피아>로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 선정된 소설가 정보라의 2025년 최신작. 이야기의 배경은 로봇 공학과 인공 자궁 연구가 발달한 근미래다. 아이를 낳는 고통과 기르는 어려움을 기술과 국가가 분담하는 이 세계에서 주거환경관리과 소속 조사관으로 일하는 주인공 '무정형'은 관할 건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사하다 수도관 아래 귀신과 눈이 마주친다.
살아있을 때 아이, 색종이는 공동보육시설인 '아이들의 집'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본 색종이를 기억하는 '가루'의 이야기에서, 친모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아이의 사건에서, 귀신 들린 건물에서 어쩐지 무정형은 떠날 수가 없다. 친구인 양육교사 '정사각형'의 도움으로 무정형은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편 해외 입양인인 '표'와 '관'은 자신들의 자신들의 입양에 '어린 사람들의 행복을 지지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의 사설단체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옛 이야기 <장화홍련전>의 자매는 귀신이 되어 부사에게 억울함을 고한다. 이 이야기에서 무서운 건 귀신이 된 자매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의 악의였다. 정보라의 소설은 "사람이 제일 무서워. 귀신은 불쌍하지."라고 덧붙인다. 간간히 웃기다 서늘하게 고발하며 사건의 진실을 향해 조사관은 다가간다. 생성형 AI에게 사주팔자를 물어보는 세상이다. 기술이 도래해도 제도와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모든 아이들, 살아남아 어른이 된 사람들,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연대'(작가의 말, 275쪽)를 전하며 세계와 함께 읽는 작가가 맺힌 목소리를 옮겨 적는다.
공부하라고 하면 이상하게 더 하기 싫어진다. 스스로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 때, 그게 진짜 공부의 시작이다. 맞춤법 공부를 권하는 것보다 재밌는 이야기를 함께 읽자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맞춤법 천재라면>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풍성하게 담아 자연스럽게 맞춤법을 습득하게 만든다.
매운맛, 순한맛, 컵라면, 삼각 김밥, 짜장, 부셔부셔, 너굴, 비빔이.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라면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기에 김치 할아버지, 달걀 누나(언니), 파 삼촌까지 '나라면 더먹으리 마을' 주민들이 가세한다. 이야기는 '맞춤법 천재라면 선발 대회'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슬쩍슬쩍 읽다 보면 '윗어른'이 아닌 '웃어른', '문안한'이 아닌 '무난한', '맞추는'이 아닌 '맞히는'이 맞는 표현이라는 것을 저절로 익히게 된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초등 필수 맞춤법 75가지를 정복하게 되는 것이다. 맵고, 순하고, 진하고, 통통한 라면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여정을 통해 어휘의 기초를 다져주는 <맞춤법 천재라면>. 맞춤법이 지루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책 한 권이 꼭 필요하다.
모든 괴담은 재미있다. 그리고 괴담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언제나 그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물론 실체를 알고 나면 왠지 조금 시시해지지만, 진실을 들을래? 말래? 묻는다면 난 언제나 듣는 쪽이다. 진실엔 어떨 땐 괴담 그 자체보다 더 경악스러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까지도 포함한 맥락 전체가 괴담을 완성시킨다.
SF 작가 이산화가 무려 4년의 기간 동안 동서양의 고문헌을 탐독하며 괴물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괴물의 '실체' 이야기라고 하겠다. 책은 시대별로 화제 되었던 세계의 괴물들을 찾아내고,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믿었던 그것들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낸다. 그 실체엔 동시대인들의 두려움, 불안, 편견, 혐오, 욕망, 허영이 담겨있다. 하나하나 괴물들의 실체가 밝혀질 때마다 허무한 동시에 루머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것인지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책은 분위기를 잘 살린 일러스트들을 통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영화 '파묘'의 콘셉트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린 최재훈의 작품들이다. 생생히 복원된 괴물들의 그림이, 당시의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에 얼마나 흥분했을지 상상하게 만든다. 괴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여러모로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괴물로 유명한 또 다른 작가 곽재식이 "괴물학의 걸작"이라는 말로 추천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성공을 그려본다. 그 모습은 각자 다를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지금보다 나은 나'를 향한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쳐 배우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길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생의 힌트들이 숨어 있다. 그들의 선택과 패턴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언젠가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치 누군가 시험 전날 조용히 건네준 요점 정리 노트를 손에 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인생 컨닝페이퍼>는 바로 그런 인생의 '요점 정리 노트' 같은 책이다. 유튜브 채널 '인생컨닝, 박종경 변호사'로 2030세대의 인생 멘토가 된 박종경 변호사가 10년 넘게 법조인으로 활동하며 관찰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패턴과 실패한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해 정리했다. 돈, 사람, 결혼, 일, 꿈, 마인드라는 삶의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책은 추상적인 동기부여가 아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현실밀착형 조언을 담고 있다. 더 이상 혼자 해답을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검증된 성공의 루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여러분도 그 지점에 닿아 있을 것이다.
진작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수많은 방황과 후회, 되돌릴 수 없었던 선택들 앞에서 조금은 덜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정말 다행이다. 뒤늦게라도 방향을 틀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니까.
레이 달리오, 그의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그 놀라운 통찰력이 이번에는 더욱 거대한 경고를 던진다. <원칙>으로 우리에게 인생과 경영의 철학을 제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국가와 제국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빅 사이클>은 단순한 경제서가 아니다. 500여 년간의 역사를 관통하며 발견한 거대한 패턴, 바로 '대규모 부채 사이클'의 비밀을 파헤치는 예언서에 가깝다. 그가 "현 상황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경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는 이미 13번째 대규모 부채 사이클의 끝자락에 서 있고, 역사가 증명하듯 이 사이클의 끝은 언제나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700년 이후 존재했던 750여 개의 외환,채권 시장 중 단 20%만이 남은 현실이 이를 웅변한다.
트럼프 2.0 시대의 개막과 함께 현실이 되고 있는 미중 갈등, 그리고 전 세계를 엄습하는 국가 부도 위기는 우연이 아니다. 레이 달리오가 정의한 '빅 사이클의 5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들이다.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는 국가들, 분열과 대립으로 얼룩진 정치 질서, 그리고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부상까지. 그의 분석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듯 정확하게 현실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 책이 단순한 경제 분석서를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이 달리오는 부채 문제가 어떻게 지정학, 자연재해, 인공지능 같은 다른 힘들과 얽혀 세계 질서 전체를 흔드는지 보여준다. 마지막에 던지는 그의 원칙을 기억하자. "걱정하지 않는다면 걱정해야 하고, 걱정한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자,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무방비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결국 정해진 흐름을 따라간다는 걸 느꼈다. 읽고 나면, 그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설 수는 없어도 적어도 휩쓸리진 않을 용기가 생긴다.
내가 살 수 있는 집, 앞으로 높일 수 있는 연봉,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 내 앞에 놓일 선택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눈앞에 한 꺼풀 돈의 장막이 씐다. 그러면 급격히 마음이 졸아든다. 과거의 선택들을 짚어보며 놓친 기회비용을 쪼잔스럽게 따져본다. 별안간 세계를 보는 관점이 조금 바뀐다. 정신이 버석 해지면서 그간 기쁨이었던 것들이 모두 단지 지출로 느껴진다.
마르고 쪼그라든 마음에 이 책은 작은 구멍을 뽁뽁 내어 조로록 물을 붓는다. 돈으로 모든 것을 계산하려 할 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돈 밖의 세계에 대해 책은 이야기한다. 교환이 아닌 증여가 어떻게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깨닫게 한다. 대가 없는 증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음은 조금씩 맑아지고 시야는 다시 트인다. 기쁨이었던 것이 다시 기쁨의 자리를 찾는다.
책은 비트겐슈타인과 토머스 쿤의 개념을 활용해 증여의 원리와 원칙을 밝혀낸다. 우리 삶 속에 증여가 늘 숨어 있음을 깨달은 사람만이 증여를 할 수 있다. 깨달음이 많을수록 모두가 더 풍족해질 수 있다.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이 책은 '증여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유의미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작은 오해로 인해 '허언증' 낙인이 찍힌 홍지민. 새학기가 되자마자 왕따로 찍혀버리니 급식실에 같이 갈 친구가 없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인터넷 커뮤니티 '밍글'에 혼자 급식 먹는 법에 관해 물어본다. 마치 자기 일인 양 공감해 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급식을 빨리 먹고 도서관에 가면 된다는 조언을 보고 실행한다. 도서관이 주는 안도감에 만족할 무렵, 우연히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서 인기도 많은 태오, 현서와 함께 고전문학 읽기 동아리를 만든다. 급식을 같이 먹을 친구도 사귀고, 동아리에서 새로운 관계도 맺고, 여느 열다섯 살 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는 지민.
홍지민은 아주 평범한 아이이다. 요즘은 '평범'이란 단어가 오염되어 별 볼 일 없다는 식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과 밟아온 생애가 다 다르듯 같은 삶은 전혀 없고 이 세상에 천편일륜적인 건 없다. 황영미 작가는 "평범한 캐릭터와 이야기로부터 특별한 순간을 발견하는" 데에 탁월한 작가이다. 4년 만의 신작인 이 책에서도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빛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딱 봐도 촌닭인데, 왜 저렇게 당당하지?'라는 의문을 받았던 홍지민. 주눅 들지 않고 평범한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 그 아이에게서 상처받았던 유년을 회복한다.
1997년 6월 25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1주일 전. 당시 12세 소녀 탄커러는 생애 첫 실연을 당했고, 동생 탄커이를 처음 만나 첫눈에 반했다. 당장이라도 이혼할 듯 서로 으르렁거리는 부모 아래에서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동생을 데리고 가출하기도 하고, 중학생이 되어서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도 어디든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갑자기 키가 8센티미터나 커진 뒤에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오지랖 넓은 사람들에게 미혼모로 오해받기도 했다. 가족의 해체와 부모의 부재, 신산한 세상사 속에서 남매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갔다. 그러던 가운데 홍콩은 행정장관 직접 선거를 쟁취하려는 열기로 뜨거워졌고, 끓어오르는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십 대 커이는 학교를 벗어나 거리로 나선다. 커러 역시 시위에 동참하였지만, 동시에 동생의 안위를 초조하게 염려한다. 홍콩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혁명의 열기와 좌절의 쓰라림 속에 남매는 조금씩 변해갔다.
소설은 작가 자신이 홍콩 민주화운동이 펼쳐지던 당시의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동생’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젊은이들의 슬픔과 사랑,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저항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2014년. 최루탄을 견디며 거리 점거 시위를 이어갔지만, 완전한 직선제 요구가 좌절된 후 홍콩 사회는 광범위한 우울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센트럴 점령 운동’ 지지자라는 이유로 당국의 압박을 받은 작가 찬와이 역시 2018년 타이완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2022년 출간한 이 소설은 2023년 타이완 금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사회적 의의를 인정받았다. 열두 살 터울의 남매가 1997년 홍콩 반환부터 2019년 민주화 운동까지의 굴곡진 시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홍콩이 이뤄낸 가치들, 상실한 기억들과 함께 홍콩에 살았던 수많은 젊은이의 초상을 담담하고도 강렬하게 드러낸 소설.
생물의 유전자를 분석하면 그 생물의 조상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를 이를 두고 생명체의 유전체를 '사자의 유전서genetic book of the dead'라고 부른다. 우리 몸을 단지 개개의 생명이 아닌 유전적 기록물로 보면, 일순간 시야가 광대하게 확장된다. 자, 그럼 이제 수천 년을 담은 눈으로 동물들을 둘러보자. 강아지, 고양이, 물살이들, 거북이, 고래, 도마뱀, 부엉이... 이들의 몸이 지닌 과거의 기록들을 상상해 본다. 흥미롭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과거를 품고 있다. 과거와 단단히 연결된 채 미래로 나아간다. 이 생생한 흥미로움의 감각을 가지고 책을 펴면 생명 진화에 관한 신비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도킨스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생물체의 외적 특징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지를 들려준다. 유전자의 적응과 예측이라는 관점에 따라 세상을 보면 인간들 사이, 동물들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위계보다는 그저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역시나 도킨스는 빼어난 저술가이고, 이 책은 왠지 유전자라는 주제에 지레 겁먹었던 독자들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였다. 도킨스의 세계에 접근해 보고자 하는 독자에겐 <이기적 유전자>에 앞서 이 책으로 흥미를 예열시키길 권한다.
한국 사회에 '저속노화'라는 화두를 던진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교수의 신작이다. 전작들에서 전한 저속노화 원칙과 실천법을 차근히 살펴보고, 다양한 독자들의 반응과 일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퍼진 저속노화에 대한 오해와 명백한 오남용 사례를 바로 잡는다. '늙지 않겠다' 라는 조급함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에도 주목한다. 건강 강박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아, 되려 가속노화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
저자는 단순한 건강 정보를 전하는 것에서 나아가, 불안전한 개인이 마음을 돌보는 방식과 각자의 삶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함께 그려 준다. 글쓰기, 악기 연주, 달리기 등 저자의 삶에 녹아든 저속노화 루틴을 공개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체화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저속노화의 길잡이로서, 지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독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책이다.
한국과학문학상이 10주년을 기념해 수상 작가 다섯 명과 함께 앤솔러지를 출간한다. 2017년 수상자 김초엽, 2019년 수상자 천선란, 2022년 수상자 김혜윤, 2023년 수상자 청예와 조서월이 작품을 실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에 김초엽은 죽은 룸메이트가 보내온 초대장이 보드게임 토큰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천선란은 멸망한 세계에서 좀비와 인간과 거북이가 바다를 향하는 이야기를, 김혜윤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 생명체 '오름'과 클라이밍으로 나누는 대화를, 청예는 데카르트의 6성찰에서 시작된 복제품과 진정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조서월은 웹에 소설을 게시하기 위해 캡차CAPTCHA 테스트를 통과해 '내가 로봇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사막에 남겨진 노인과 그와 함께인 로봇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SF라는 게임의 규칙을 변용해 작가들은 이세계, 좀비, 외계, 사고실험, 로봇 등의 다채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이야기를 타고 반투막과 해변과 사막을 지나쳐 우리는 결국 이 이야기들이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죽음 너머, 그리고 사랑.
오랜만에 단편으로 만나는 김초엽의 소설이 반가웠다. '확률이 너무 작은 수치여서 0이나 다름없다'(48쪽)는 화학의 언어에서 김초엽의 소설은 관측되지 못한 존재를, 0과 다름없지만 0은 아닌 존재들을 본다. '이 현실이 나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딘가 내게 맞는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고 믿는'(66쪽)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비구름을 따라서>를 마치며 그는 작가노트에 '너머의 이야기'에 매료되는 스스로에 대해, '그 미약한 힘을 자꾸 믿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한국과학문학상이 소개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10년을 함께 보낸 독자들도 미약한 힘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리라 생각한다. 세계의 법칙으로는 지기만 하는 사람들, 세상의 장력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과학소설을 읽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상상하며 독자인 나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벅차올랐다. 이 장르적인 벅참을 함께 나누며 다음 10년을 기대하고 싶다.
이슬아의 등장은 새로웠다. 자신만의 고유한 콘텐츠를 가지고 '일간 이슬아'라는 간단한 구독 플랫폼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직접 만났다. 지금은 너무도 흔한 구독 시스템이지만, 당시엔 무척이나 신선한 시도였다. 이슬아는 이후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며 현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산뜻한 작가가 된다. 여기서 그쳤다면 그녀의 커리어는 조금은 뻔한 플롯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책을 직접 출간하는 출판사를 차리며 대표로서의 아이덴티티 또한 그는 차례로 획득해 나간다. 창작자이자 프리랜서, 또 대표로서의 이슬아가 오랜 시간 동안 몸소 부딪히며, 깨닫고, 드디어 정립한 글쓰기, 그중 가장 실용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 있는 이메일 쓰기에 대해 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나는, 최근 일주일 동안 총 487통의 이메일을 받았고, 이중 161통의 이메일에 답장, 전달을 했거나 새 메일을 작성했다. 과연 나는 '제대로' 이메일을 작성했을까? 실용서와 에세이 그 중간 어디쯤 있는 이 책은 독자의 이메일 생활을, 업무하는 태도를, 종국에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과연 너는 '제대로' 일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 책을 읽으며 자주 웃었고, 종종 뜨끔했으며, 자꾸 새로운 다짐을 했다. 이슬아만이 쓸 수 있는, 단단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이 책은 이제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대화가 익숙한 현대인들 모두의 필독서가 될만한 값진 책임에 틀림없다.
연필로 그린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은 작가 펀자이씨의 트레이드마크다. 2022년 인스타그램에 연재한 이야기들을 모아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와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 두 권의 책으로 독자들을 만났고, 이번에는 그중 엄마 이야기를 따로 모아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1권과 2권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일상이 펀자이씨툰 특유의 개성 있는 그림과 따뜻한 시선으로 담겨 있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주는 혼란과 상실감은 무겁고 낯설지만, 펀자이씨는 그것을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낸다. 엄마의 엉뚱한 말과 예기치 못한 행동들, 그 속에 녹아 있는 가족 간의 애정과 웃음을 따라가다 보면, 슬픔보다는 삶의 온기를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억은 희미해져 가지만 순간순간 반짝이는 감정과 가족간의 끈끈한 마음은 여전히 선명하다는 메시지는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그 잔잔한 울림은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순간’을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여운이 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주거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은 대개는 우리가 부동산을 바라보는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은 살기 위한 것이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라는 이상적 원칙과 "다른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서 부동산에만 몰릴 수밖에 없다"라는 냉혹한 현실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개인의 관점 변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부동산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한국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근본적 갈등은 결국 '살 곳을 마련하는 문제'와 '재산을 불리는 문제'라는 두 가지 상반된 필요가 한 공간에서 충돌하면서 생겨났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일반인의 소득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 투자하자니 주식은 변동성이 크고 예금 금리는 인플레이션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부동산만이 유일한 자산 증식 수단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런 구조적 딜레마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반드시 풀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회적 과제가 되었다.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불황, 정책 변화와 경제 위기를 모두 겪어온 1세대 투자 전문가 김사부는 이런 사회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감정적으로 뛰어들거나 남들 따라 하는 무작정식 투자가 아닌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한 부동산 투자 접근법을 강조한다. 한국인에게 부동산은 내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존적이고 절박한 과제인 동시에, 평생 모은 돈을 안전하게 불려서 진정한 경제적 자유와 여유로운 삶을 얻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투자 도구인 듯하다. 이 책은 부동산을 둘러싼 끝없는 사회적 논쟁과 개인적 고민의 늪을 뛰어넘어,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정부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투자 철학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실행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경제적 독립과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명확하고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해답을 제공한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이밍이 아니라 준비라는 생각이 든다. 묵묵히 공부하고 흐름을 지켜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의 문은 열릴지 모른다. 오늘은 그 기다림을 시작해 본다.
<다른 사람>, <화이트 호스> 등의 작품으로 한국사회라는 공간에서 여성으로 존재하는 공포를 신들린 듯 받아적은 소설로 작품 목록을 쌓아온 소설가 강화길이 4년 만에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소외된 소도시, 만병통치약을 파는 교회, 학교 수영장, 자연주의 치료원 등의 공간을 배경으로 서로를 잊지 못하는 여성들의 끈적이는 눅진한 감정이 교차하며 강화길이라는 세계의 한 분기점을 찍는다.
열다섯 살 가을, 박지수는 살이 찌면서 세계와 불화하고 비로소 부피만큼 존재감을 얻는다. 모두가 사랑하는 소녀 '해리아'가 지수를 알아본 것에 감격하던 날도 잠시, 수영장에서 벌어진 사고 이후 지수는 다시 세계와 불화한다. 그는 몸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통제에 능한 마른 여자가 되어 먹고 굶고 토하고 통증을 겪는다. 이유 모를 통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는 자신의 최초의 기억이 머무는 곳으로, 호랑이 굴로 스스로 간다.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에 원인이 없음에도 몸에 문제가 생기면 세상은 그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라 말한다. 몸이 너무 커지거나, 너무 작아지거나, 몸이 아프거나, 몸이 기능하지 않는 건 모두 너무 많이 먹어서, 너무 적게 먹어서, 운동하지 않아서, 마음을 편히 먹지 않아서 벌어진 개인적인 문제다.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몸은 전쟁터가 된다. 2015년 이후 10년이 지났다. 2025년의 새로운 독자들이 다시 강화길이라는 호랑이굴의 입구에 선다. 소설 속 여자들은 해적판 소설과 설화와 도서관에 놓인 오래된 책을 쥐고 세계에 맞선다. '호랑이 뱃속에 들어간 여인들'은 살점을 베어물고 뚜벅뚜벅 전진한다. 나아갈 걸음걸음, 그렇게 '치유의 빛'이 비칠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늘 먼저 떠나는 삶을 선택한 발레리나 나탈리아.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아버지처럼 그는 도시에서 도시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끊임없이 떠돌며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되었다. 그러나 가장 눈부신 순간, 치명적인 사고로 무대를 떠난다. 그리고 2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그녀 앞에 과거의 사람들이, 자신을 가장 높이 올리고 다시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사람들이 유령처럼 나타난다. 잊고 싶었던 사랑과 경쟁, 그리고 무대 복귀 제안. 자신을 망가뜨릴 뻔한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영영 떠날 것인가. 떠도는 삶의 끝자락에서, 나탈리아는 인생 마지막일지도 모를 선택 앞에 선다.
<작은 땅의 야수들>로 2024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신작. 소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 세 도시를 무대로 완벽한 비상을 꿈꾸는 한 무용수의 치열한 생을 따라간다. 야수가 포효하던 작은 땅에서 독자의 심장을 뛰게 했던 작가는, 이번엔 밤새들이 날아오르는 러시아의 발레 도시로 우리를 데려간다. 시공간이 달라져도 고통 속에서 인간이 끝내 품어내는 존엄과 열망, 삶의 정수를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화려하고 대담한 문체는 여전하다. 가난과 결핍을 딛고 세계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었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 또한 짊어져야 하는 나탈리아. 예술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비추는 이 이야기는 시련 속에서도 끝내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에 대한 비유이자, 깊은 상처를 감내할 만큼 간절한 순간을 지나온 우리 모두의 찬란한 삶에 대한 은유다.